본문 바로가기

A whole new world/캐나다 코업 이야기

2020 수능 관련 뉴스를 보며 느낀 캐나다와 비교한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 대한 고찰

어제 2020년도 수학능력검정시험이 치뤄졌다. 그리고 바로 또 정말 안타까운 기사를 접하게됐다. 매년 수능 끝난 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수능 성적을 비관해 목숨을 끊은 고3 학생의 기사'. 정말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깝다. 

 

나 역시 어려서부터 사교육열이 높은 강남권에서 초, 중, 고를 나왔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큼 훌륭한 대학에 진학하는데 실패했고, 참 우울한 스무살을 보냈다.

 

가장 즐겁게 보내야할 스무살을 스스로에게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고, 삶을 비관하며 보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락도 끊고, 대학교도 그저 책가방만 매고 왔다갔다 하며 과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영혼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런 나에게 변화의 계기를 준 것은 동아리 활동이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1학년 말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봉사활동 동아리에 가입했고, 해당 활동을 하며 관광분야에 종사하겠다는 목표도 가지게 되고 다른 과의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며 학교 생활의 즐거움을 하나씩 찾아갔던 것 같다.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다시 연락하며, 학업에도 다시 열중하고 다양한 대외활동들을 하며 바쁜 대학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게된 후에도 뭔가 좀 잘못됐던 것 같다. 나의 마인드셋은 '좋은 학교를 못갔으니 좋은 직장을 가야지'로 바뀌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가겠다는 일념 하에 (그 때는 그게 내가 원해서 설정한 목표라고 생각했으나 돌이켜보면 역시 사회적 기준에 발맞추어 설정한 목표였던 것 같다.) 오직 그것을 이루기 위한 삶을 철저하게 살았다.

 

그렇게 막학기에 취업이 되어 졸업 후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2년간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직장생활을 하며 자존감이 많이 올라가기도 했지만, 경주마처럼 달려온 인생 속에서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그런 시기에 캐나다로 떠나게 됐다. 외국인으로서 구할 수 있는 잡은 사무직보다는 어린 친구들이 많이 하는 서비스직 아르바이트 뿐이었고, 투잡을 뛰며 평균 나이 17~20세 가량의 어린친구들과 함께 근무를 했다. 그리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도끼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물론 외국나이 17~20세는 우리나라 나이로 18~22세와 같다. 하지만 동년배 우리나라 학생들이 살고 있는 삶과 캐나다 학생들이 살고 있는 삶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들은 우리가 그저 책만보고 공부할 시기에 경제활동을 시작했고, 부모로부터 독립한 학생들도 있었고,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고 참 어른스러웠다. 어쩔땐 나이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일을 하면서 그 친구들로부터 오히려 도움을 받기도 하고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그 친구들이 어린 나이에도 그러한 마인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여러가지 환경적, 문화적 차이도 있겠지만 아래 네가지 원인이 가장 크다고 생각이 들었다.

 

 

1. 이른 나이에 경제 활동을 시작한다.

집안이 부유한 친구들일지라도 보통 캐나다 학생들은 15~16세 가량부터 파트타임 잡을 시작한다. 운전 역시 비슷한 나이에 연습면허를 따며 시작한다. 합법적으로 경제활동이 가능한 나이가 우리나라보다 낮다. (우리나라도 부모의 동의가 있으면 고등학생들도 아르바이트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니가 공부해야지 무슨 아르바이트를해'라고 말할 것이다.)

 

알다시피 다른 사람 밑에서, 고객을 상대하며 일을 하는 경험은 집에서는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해주고 부모가 이렇게 힘들게 경제활동을 하는 구나를 간접 체험하게 해주어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도 갖게 해준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사실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역시 느끼게 해준다.

 

얼마전 샘 해밍턴이 한 인터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윌리엄과 벤틀리가 15살정도가 되면 아르바이트를 시키겠다는 인터뷰. 경제 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직접 배우게 해주고 독립심을 길러주는 것은 외국의 대표적인 교육방식의 하나이고 매우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2. 이른 나이에 건전한 이성 교제를 시작한다.

물론 요새는 우리나라도 초, 중, 고등학생들이 굉장히 마인드가 개방적(?)으로 변했고 이성교제를 시작하는 연령이 낮아졌다. 그러나 내가 매우 놀랐던 점은 캐나다에서는 15살때부터 만나 결혼에 골인하는 등, 학생때부터 만나서 장기연애 후 결혼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는 점이다. 어린나이에 만났다고 해도 단순한 불장난(?)같은 연애보다 진지한 만남을 이어가는 친구들도 매우 많았다.

 

우리 나라처럼 '남중, 남고, 여중, 여고'가 많지 않다. 거의 없는 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공부에 집중하게 하겠다'는 명목으로 남학교 여학교를 선호하는 부모님들이 많은데 사실 사회에 나가면 남회사 여회사는 없다. 남녀가 같이 어우러져 사는 것이 사회이고 이성교제 경험을 통해서 상대를 배려하는 법,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등 정신이 많이 성숙해지게 된다 생각한다. 무조건 안된다, 갈라놓을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제력을 믿고 적절한 지도와 감시하에 어려서부터 남녀간의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에 맞다고 생각한다. 

 

3. 물고기를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배운다.

제목 그대로. 외국의 부모나 선생님들은 학생에게 답을 바로 주지 않는다. 그들이 답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난관에 부딪힐 때 적절한 힌트를 준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했을 때 학생들은 더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4.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탐색할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내가 일했던 곳에서 직업탐방(?) 처럼 근무하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았다. 물론 보수는 받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관심있는 분야의 기업에서 미리 일해보고 (소소한 역할일 지라도) 그것을 체험해보며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탐색해볼 기회가 충분히 주어진다. 모든 고등학생은 졸업을 위해 의무적으로 이 직업탐방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정말 인상적인 제도였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싶은지에 대한 고민 없이 수능 성적에 맞추어 대학교를 가고 전공을 결정하는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서 가장 도입해야하는 제도가 바로 이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5. 토론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캐나다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느낄 수 있는 것이 이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은 성찰을 했는가이다. 어린 친구들일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이나 미래에 관한 것을 참 조리있게 말로 표현할 줄 알았다.

 

또한 두 번째 직장에서 근무할 때 면접이 토론면접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참 다들 말을 잘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거침 없었다.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내가 가장 힘들었던 점이 이 부분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진 나서지 않고, 튀지 않고 그저 조용히 공부 잘하는 학생이 최우등생이라고 배웠는데 갑자기 대학교에 가니 팀 프로젝트다 발표다 앞에 나서야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요새 특목고에서는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은 모두 학교에 가서 수동적으로 수업만 듣고 책과 문제집으로 학습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 결국 사회에 나가서 필요한 능력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조리있게 전달할 수 있는 논리력, 사고력, 소통능력이다. 이런 것들이 어릴때부터 함양될 수 있는 수업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시아인은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라는 그런 서양인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당당히 우리 학생들이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날이 와야한다고 생각한다.

 

6. 사회가 실패/실수에 관대하다.

이 6번은 사실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지만, 정말 캐나다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많이 느꼈던 부분이다. 일을 시작해도 충분한 트레이닝을 제공하고, 내가 실수해도 책망하지 않는다. (물론 일한지 오래되고 숙달될 시점이 됐는데도 실수를 한다면^^ 혼난다.) 아직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고 누구나 일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을 알기 때문에 크게 나무라지 않는다. 

 

또 캐나다의 대학 입학 제도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의 SAT 같은 경우는 일년에 여러번 시험을 볼 수 있고 그 중에서 가장높은 성적을 활용해 원수를 접수할 수 있다. 수능이 더 인생의 거대한 시험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일년에 딱 한번밖에 시험이 없다는 제한성도 무시할 수 없는 큰 이유다.

 

물론 여러가지 나라의 상황이나 현실적 여건에 의해서 미국처럼 1년에 여러번 수능을 치르는 시스템이 도입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실수하거나 실패한 사람을 나무라기보다 Second chance가 있다고 낙담하지말라고 지지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또 여러 기사를 보고 생각이 많아져 긴 글을 써봤다. 그 나이때는 정말 주변에서 아무리 말해도 와닿기가 힘들겠지만, 절대로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내 주변에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아직까지 백수로 지내거나, 삶의 방향성을 찾지 못한 친구도 정말 많다. 반대로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잘 살고 있는 친구들도 많다. 

 

결국에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내 행복에 우선가치는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고민하고 그 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가는 삶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행복의 가치가 '부(돈)'에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의 가치가 '일을 통한 자아실현'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을 지라도 업무가 단조롭다면 불행할 것이다. 자신만의 행복을 정의하고 그를 위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캐나다는 나에게 '니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라'는 긍정적 가르침을 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한국에 다시 돌아온 뒤에도 멘탈이 크게 무너지지 않고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캐나다 사람들이 여유롭고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나라가 사람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기 때문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친절과 미소에서 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수험생들도 수능의 결과로 너무 좌절하지 않고 이 시간을 진정한 자신을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놀았으면 좋겠다. 노는 것도 인생의 큰 공부니까!